HOW DO YOU TASTE?

물론, 기분을 꺼내어 쓸 준비들은 되셨겠지요
윤시원, 곧 프리랜스 에디터


I feel music in your eyes

집에는 잘 도착했습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왔어요. 느닷없이 찾아오는 한밤중에 퇴근하며, Shigeaki Saegusa의 Trace of the stars라는 앨범을 떠올려봅니다. 1978년도에 발매된 앨범이며, ‘Quasar 3C273’ 이라는 트랙을 제일 좋아하는데요. 그런데 이상하다. 왜 굳이 음악일까요?

짧게 말할게요. 음악회사에 재직 중입니다. 그러면 저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음악을 미리 듣게 되는 일도 있고, 사랑하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가장 가까이서 듣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이들이 음악으로 그려내는 세상이 불쑥 좋고, 언제나 반갑습니다. 그 마음은 누구에게나 같아요. 그런데 왜 하필 음악일까요? 매일 음악을 듣고, 그 음악이 타인에게 어떤 감정을 주어야 좋을지 고민하는 것이 저의 일인데, 이걸 일이라고 생각하면 집에 와서는 다른 것을 하고 싶을 텐데 왜 음악일까요. 그 결론을 아직 알 수 없었기에, 취향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써 달라는 의뢰에 흔쾌히 답하지 못했습니다. 지난주부터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니 조금 아득해지는 기분이 찾아들더군요. 취향과 전혀 상관없는 영화를 보다가 한 시간쯤 지나 그만두고 다시 음악을 들으면서 누워있기도 했습니다. 돌고 돌아도 제 마음에 와 닿는 것이란 모르는 사람의 노랫말이네요. 이 글을 써내려가는 시점으로 제 스포티파이에는 3,166개의 음원이 있네요. 유튜브뮤직에는 3,339곡의 라이브음원과 라이선스가 만료된 음원들이. 저는 기분을 꺼내어 보는 것이 즐거워요. 음악을 듣는 일은 비단 오늘뿐이 아닌 어제에도 있었습니다. 엊그제에도, 엊그엊그제에도 있었다니까요?

내 청각이 살아있는 한, 이것은 내가 향유 할 수 있는 중 가장 값싸고 비싼 취미입니다. 학교를 다닐 때에는 수업에 가기 너무나도 귀찮으니 수업을 째고 공연을 보러 다녔습니다. 나는 돈을 지불하고, 그들은 시간을 내어줍디다. 오히려 맨 뒤에서 공연을 보는 때의 기분에 대해서 설명해볼게요.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머리를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 보입니다. 그 광경이, 제게는 매우 아름답게만 보이데요. 나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구나. 어떤 공연에서는 모든 공연의 과정을 녹음해서 돌아가는 사람을 보게도 되었습니다. 저는 보통 공연을 볼 때 숱한 뒤통수들을 면밀히 삼키다가 노래하는 아티스트를 다시금 훑습니다. 이 광경 참으로 아름답게 와 닿아요. 삶이, 산다는 게 참 이상해요. 보편적인 삶이란 대개 쉽지가 않고, 잠깐의 환기로는 5분짜리 음악이 뭣보다도 낫습니다. 더불어서요. 왜, 그런 날들 종종 있더라고요? 어떤 기분을 꺼내야 할 지 모르겠는 날. 그런 날에는 기분을 당겨서 씁니다. 일종의 리볼빙인데요. 그래서 비축해두는 것은 플레이리스트. 이것은 일기보다 좋은 습관입니다. 굳이 그런 것을 하는 이유가 있나고요? 물어온다면 글쎄요. 음악은 기분을 만들어 주거든요. 이 기분은 내 하루의 기억이 되기도 하고, 내 계절의 테마가 되기도 합니다. 풍경이 되기도 해요. 한강을 거닐 때, 지나간 관계들을 생각하는 때, 되려 아무 생각이 없고 싶을 때 또한 함께합니다. 내 얘기를 할 필요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가장 상호작용이 없는 음악. 그래서 좋아요. 창작자의 생각이 가사나 멜로디로 시작해 아-하는 발화문장으로 나아가 이윽고 음계를 가진 음악으로 나오게 되는 순간으로 시작하겠네요. 짧게는 몇시간에서 길게는 평생이 걸리는 이 작업의 결과물을 제가 무한히 들을 수 있다는 사실로 즐겁습니다. 그들의 노력에 비해 내가 너무 쉽게 듣는 환경은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앨범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녹아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더욱 드러내지 않고 들으려 합니다.

이상해요. 삶을 노래로 치환한다는 것. 하지만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노랫말과 기억 하나쯤은 있지 않겠나, 짐작해봅니다. 저를 애호가의 세계로 인도해준 친구는 저에게 어느 여름 이어폰을 건네주며 10CM의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를 들어보라 말했고, 저는 이어폰의 한 쪽을 건네주는 친구에게 뭐 이딴 이름과 제목이 있느냐며 반문했지만 그 순간이 없었다면 저는 음악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감싸안고 취향이라 짐작하고 살았을 지 모릅니다. 그 일이 10년도 더 된 일이네요. 그 전에는 무엇도 듣지 않았거든요. 여전히 꺼낼 기분이 많음에도 모르는 체 하는 사람들에게 묻겠습니다. 오늘은 어떤 기분으로 살아보시겠나요. 당신이 테크노를 사랑하든, 어쿠스틱 아니 힙합을 사랑하든,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니까요. 매일 세상으로 쏟아지는 이 언어들은 여러분의 무의식속으로 속속들이 숨어들테고, 당신의 순간은 쌓여서 '어 그때 그랬었지'라며 추억하게 되겠습니다. 끈기 없는 제가 가장 명확하게 기억을 쌓는 방법입니다. 당신이 어떤 기억들을 꺼내어 살고 있는지 되짚어보는 방법. 새로운 음악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충분히 좋은 시간이 되겠네요. 모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저는 늘 그것이 제일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