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GING DIARY] MUSE 00

디깅다이어리1 뮤즈


솔직히 말할게.

대충 12-13살이었던 것 같다. 당시 슈퍼주니어를 좋아하던 나는 팬픽에 깊이 빠져있었다. 웬만큼 유명한 팬픽들도 다 읽고 이것저것 새로운 것들을 찾아 인터넷을 어슬렁 거리다가 라는 텍스트 파일을 다운받았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슈퍼주니어 멤버들이 어느 락 밴드의 멤버인 이야기였다. 그 팬픽을 통해 나는 Guns N’ Roses, Red Hot Chilli Peppers같은 유명한 락 밴드부터 Two Ton Shoe라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거 같은) 밴드까지 접하게 되었다.

텍스트로는 음악을 알 수 없었는데 음악에 대한 호기심 반, 과몰입러 특유의 모든걸 알겠다는 허황된 지적 허영심 반으로 작가에게 직접 연락해 팬픽에 삽입된 모든 음악의 파일을 받아냈다. 나도 기타를 쳤었다고 물꼬를 트니 작가분은 엄청나게 기뻐하면서 팬픽에 등장하지 않았던 본인의 후보곡까지 전부 압축해 이메일로 전송해주셨고, 나는 일단 모든 파일을 당시 소중하게 쓰던 아이리버 MP3에 담아버렸다.

그 이후로 한동안은 락을 들었다. 특유의 중 2병적인 감성으로 ‘나는 특별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뽕에 취해 있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그 음악들이 좋았다. 그래서 아무런 편견 없이 주변 친구들에게도 주곤 했다.

어느 날 본 조비(Bon Jovi)를 듣는데, 엄마가 와서는 반갑게 ‘엄마가 너 가졌을 때 본조비랑 퀸을 들었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어딘가에서 카세트 테이프를 몇 개 꺼내왔다. (나는 ‘보통 태교할 때는 클래식 듣지 않아?’라고 물었고, 엄마는 ‘내가 좋은거 듣는게 태교야.’라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나는 대충 로큰롤베이비였고, 나의 취향은 엄마 뱃속에서 부터 생겨난 것이었구나!

언제부터 뮤즈(MUSE)를 좋아하게 되었더라. 그 정확한 시기나 계기 같은 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중학생이던 2008년, ‘트와일라잇’이라는 영화를 보러 들어 간 극장에서 뮤즈의 ‘Supermassive black hole’을 들으며 ‘여기서 뮤즈가 나온다고...? ‘했던 기억이 있으니 처음 알게 된 건 2008년 이전의 일이겠다. 이 당시는 확실히 중2병이 겹쳐서였을까,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래 가사와 시작을 강하게 알리는 기타 리프, 음악을 꽉 채우는 드럼 비트, 매튜 벨라미의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목소리가 나를 뮤즈에 빠지게 했다. 이때는 Hysteria, Stokholm Syndrome, Psycho 등등을 많이 들었다. 지금 보니 제목만 들어도 중2병같다. (하지만 정말 명곡이다.)

사실은 한동안 뮤즈를 잊고 지냈다. 그 대신 한국 인디씬을 기웃거리기도, 유영진 아버지의 아이들에 빠져있기도 했다. 다시 떠올린 건 꽤 최근의 일이다. 어찌저찌 인디 음악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는데, 이곳은 음악 취향 이야기로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곳이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아주 자주)들을 때마다 나는 뻘쭘해하면서 ‘저는.. K-POP이요...’라고 대답했다. 본인도 K-POP아이돌을 좋아한다는 반응도 더러 있긴 했지만 나는 괜히 그렇게 대답하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음악적 취향에 대해 조금 회고해 보다가 아, 맞다. 내가 중학교때 락을 들었었지! 하는게 떠올랐다. 그렇게 다시 너바나를 듣고, 섹스 피스톨즈를 듣고,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듣다가... 뮤즈가 기억나버렸다!

그래서 나는 다시 락을 듣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다시 뮤즈에 빠져버렸다. 최근 스포티파이 연말정산을 하는데, 올해 가장 많이 들은 가수 1위가 뮤즈였다. 가장 많이 들은 장르 1위는 얼터너티브 락. 그리고 스스로도 충격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가장 많이 들은 곡 1위가 뮤즈의 대표 격인 ‘Time is running out’이나 ‘Plug in Baby’도, 중학교 그 시절 많이 들었던 노래도 아닌 ‘MK Ultra’라는 곡이었던 점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뮤즈에 대해 더 알고싶어졌고 락스타가 되고싶어졌다. 그래서 ‘MK Ultra’라는 곡을 시작으로 나의 디깅 다이어리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