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GING DIARY] HEDWIG 00

디깅다이어리1 헤드윅

요즘 내가 말 그대로 Digging하고 있는 것은 뮤지컬 ‘헤드윅’. 동독 출신의 소년이었으나 성전환 수술에 실패하고,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여겼던 락스타 토미에게도 버려진 가수 헤드윅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이다. 2년전쯤 친구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는데, 기존 뮤지컬과 달리 1명의 배우가 2시간 반이 넘는 공연을 이끌어간다는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때문이었을까, 영등포에서 의정부까지 달려가 한 번 더 관람하기도 했다. 공연 시간동안 헤드윅이라는 인물과 함께 울고 웃었고, 다음 시즌을 기다리며 관련된 OST는 모두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2년을 기다린 끝에, 2021년 8월 헤드윅이 개막했다. 개막 당시, 오래 기다려온 마음을 보상 받겠다는 의미로 주위에 9번은 반드시 보겠다고 소리쳤는데(티켓 1장 값이 11만원으로, 얼추 100만원 정도 사용하겠다는 뜻이었다.), 서울 공연에서만 벌써 8번의 회차를 채웠다. 주위 친구들이나, 부모님은 어떻게 같은 공연을 8번이나 보냐고 물어보지만, 뮤덕(뮤지컬 덕후)들은 공감할 것이다. 8번 관람해도 8번 모두 다른 공연이라는 사실을. 아무리 회전문을 돌아도 매번 새로운 디테일이 추가되고, 미묘하게 감정선이 다르다. 그리고 공연을 본 나도 항상 다른 생각에 잠기게 되는데 그게 바로 뮤지컬의 매력이기도 하다. 8번의 헤드윅이 나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 첫번째 공연(21.08.05)
오만석(헤드윅) / 이영미(이츠학)/ 이준(음악감독)
다시 돌아올까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려왔던 오드윅(오만석+헤드윅). 기대했던 만큼 꽉 찬 서사와 감정선, 완벽한 노래로 돌아왔다. 지난 시즌과 다르게 코로나 시국을 반영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바이러스가 붙어 있는 옷을 입기도 하고, 향이 강한 향수 ‘집착’을 뿌리면 자가 격리가 필요하다는 애드립으로 웃음을 주기도 했다. 함께 뛰어놀던 커튼콜 넘버는 어쿠스틱 버전으로 바뀌었는데, 잔잔한 노래로 짙게 여운을 남긴다.

▶ 두번째 공연(21.08.17)
조승우(헤드윅) / 이영미(이츠학)/ 최기호(음악감독)
또 다른 오리지널 캐스트 조드윅(조승우+헤드윅) 관람. 오드윅은 세상 풍파를 모두 겪어 세상과 자기 자신까지 혐오하고 있는 헤드윅이었다면, 조드윅은 그저 외로운, 사랑받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츠학을 사랑함에도 ‘교육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일종의 학대를 하는 오드윅과 다르게, 조드윅은 이츠학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만 그를 놓아주지는 않는다. 유일하게 그의 곁에 남아있는 이츠학을 강제적으로 붙잡는다.

▶ 세번째 공연(21.08.29)
오만석(헤드윅) / 이영미(이츠학)/ 이준(음악감독)
두 헤드윅은 캐릭터에 대한 해석뿐만 아니라 무대에서도 다른 모습을 보인다. 조드윅은 넘버를 부를 때 노래에 집중하여 감정을 전달하려 하지만, 오드윅은 각 넘버별로 시그니쳐가 되는 춤을 통해 감정을 더욱 극적으로 전달한다. 헤드윅의 정석이라고 불리는 그는 동독출신인 헤드윅의 캐릭터에 맞춰 대사 중간중간 독일어를 사용하고, 영어마저 독일식 탁음을 사용하는 디테일을 새로 선보이기도 한다.

▶ 네번째 공연(21.09.08)
오만석(헤드윅) / 이영미(이츠학)/ 최기호(음악감독)
다른 날보다 우울함이 짙었던 오드윅. 등장할 때부터 평소보다 다운된 텐션이라고 느껴졌는데, 실제 극에서도 매번 반복되던 애드립이 군데군데 사라졌다. 오드윅의 무거운 감정이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하는 고민은 헤드윅이 토미에게 버려진 슬픔, 그리고 토미라는 인물로 이어진다. 토미는 왜 헤드윅을 떠났을까? 헤드윅의 앵그리인치를 마주했던 토미는 그저 어린 소년이었고, 할 줄 아는 것이 도망치는 것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된 토미. 미성숙했던 그때와 다르게 헤드윅에게 바치는 노래를 통해 자신이 놓았던 헤드윅을 다시 붙잡고, 일어설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 다섯번째 공연(21.09.22)
오만석(헤드윅) / 이영미(이츠학)/ 이준(음악감독)
전남편 루터에게 선물 받은 가발을 구석에 던지는 헤드윅. 가발에게 “나 쳐다보지 마, 불쌍한 척 하지도 마”라고 말해왔던 오드윅이지만 오늘만큼은 그 뒤에 “다 네가 선택한 거야”라고 덧붙이는 대사가 특히 인상적이다. 헤드윅의 상징은 화려한 가발이지만, 오드윅에게 가발은 하나의 족쇄. 가발을 보면서 성전환 수술을 하게 된 자신의 선택에 대해 의심과 후회가 들어 구석에 쳐박아두면서도, 결국 가발을 써야만 자신이 헤드윅으로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여섯번째 공연(21.10.04)
오만석(헤드윅) / 이영미(이츠학)/ 이준(음악감독)
토미만 곁에 있으며 행복했다던 헤드윅. 토미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헤드윅이었지만 오늘의 토미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그저 어린 소년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비열한 사람. 헤드윅의 앵그리인치를 만난 후, 너무 놀란 토미는 이 순간이 그저 위기이고,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나 집에 가봐야할 것 같아”, “내가 널 사랑한다잖아 그러니까 보내줘”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헤드윅만을 위한 노래를 부르지만, 그 또한 “자신”이 용서받고 싶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 일곱번째 공연(21.10.20)
오만석(헤드윅) / 이영미(이츠학)/ 이준(음악감독)
지금까지 애정과 증오 사이 어디쯤의 관계였던 헤드윅과 이츠학(굳이 고르자면 증오에 가까웠다). 자신을 무시하고 학대하는 헤드윅에게 분노의 감정이 컸던 이츠학은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그에게 주먹을 날리려고 해왔다. 평소 이츠학은 헤드윅에 대한 분노로 그의 이야기조차 귀 기울이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헤드윅의 아픈 과거를 듣게 된다. 그의 아픔에 공감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결국 사랑하게 된 이츠학. 결국 슬픔에 폭주하던 헤드윅을 주먹이 아닌 포옹으로 감싼다. 헤드윅이 자신을 놓아줄 때 그를 쉽게 떠날 수 없지만, 무엇이 서로를 위한 길인지 알기에 헤드윅을 벗어나 이츠학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 마지막 공연(21.10.31)
오만석(헤드윅) / 제이민(이츠학)/ 이준(음악감독)
새로운 이츠학 배우 관람. 오드윅과 나이도, 내뿜는 에너지도 비슷했던 미츠학(이영미+이츠학)과다르게 제츠학(제이민+이츠학)은 나이도 훨씬 어리고 몸도 가냘픈 이츠학이다. 헤드윅에 대한 감정이 애정과 증오 사이에 있던 미츠학이지만, 제츠학은 누구보다 헤드윅을 사랑하고 그렇기에 그의 모진 행동에 더 상처받는다. 헤드윅과 함께하지도 벗어나지도 못하는 제츠학. 결국 헤드윅이 스스로 토미를 놓고, 다시 이츠학을 놓아주면서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