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SPOOKY X-MAS WITH JAURIM

2022년, 자우림의 크리스마스 콘서트
@iamsorare_


지난 12월 10일, 나와 연인은 평소라면 절대 가지 않을 2호선의 한복판에서 만났다. 연신 어딜 가는 거냐 묻는 그에게 나는 곧 알게 되니 그냥 따라오라고만 했다. 거짓말에 능하지 못한 내가 아주 작은, 그러나 결정적인 단서라도 흘릴까 봐. 그리고 그 단서를 예리하게 포착한 연인이 대번에 답을 알아맞힐까 봐. 나는 그저 내릴 역을 놓칠세라 전광판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하철 환승을 거쳐 도착한 곳은 올림픽 공원 역. 9호선의 끄트머리에 다다르고서야 나의 연인은 눈이 동그래진 채 네이버에 ‘자우림 콘서트’를 검색했다. 맞다, 나는 연말 선물 겸 그 몰래 자우림의 를 예매했다. 최근 도쿄 여행으로 출혈이 큰 상태라 머뭇거리다가 직전에 남는 자리를 주운 탓에 2층 뒷 좌석밖에 구할 수 없었지만.

거의 한 달이 지난 이야기를 왜 이제서야 하냐면, 원래 이런 글을 쓸 생각이 없었는데 아직도 내가 자우림의 음악을 들으며 덕심에 뻐렁치고 있기 때문이다.

오프닝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발매한 캐롤 앨범의 수록곡으로 시작한 뒤, 이어서 등장한 곡은 ‘광견시대’와 ‘Peep Show’. 해당 곡이 끝난 이후, 김윤아님(이후 호칭은 윤아 웅니)은 올 한해의 심정을 음악으로 표현해보았다는 속 시원한 멘트를 날려주셨다... 참고로 그의 오프닝은 늘, 어느 공연에서나 무대를 휘어잡고 청중의 눈과 귀를 동시에 사로잡기 때문에 이때부터 난 이미 ‘역시 웅니는 마왕이 틀림없다… 여왕도 아니다. 그냥 마왕이다. 사람을 홀린다….’ 하며 두 손을 모으고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몇 곡을 더 부르고 나서, ‘FADE AWAY’-‘영원히 영원히’-‘슬픔이여 이제 안녕’ 세 곡을 연달아 불렀다. 윤아 웅니는 발성은 물론이고 딕션도 좋아서 공연장에서도 가사가 또렷이 들린다. 여전히 두 손을 그러모은 채 가사를 음미하며 참 솔직하고 적나라한 가사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사라지지만 영원히 흐려지지 않길 바라는 소망, 그래서 우리의 슬픔에 안녕을 고하고자 하는 바람. 본인의 마음을 글자로 표현하는 일은 때로는 너무 직설적으로 느껴져서 낯 뜨겁다고 느끼는 나로서는 본인의 솔직한 감정을 부끄럼 없이 저렇게 담담하게 혹은 절규하며 드러내는 그가 너무 멋진 것이다. 그건 나의 모든 것을 솔직히 드러내도, 공감해줄 사람이 있다는 그 믿음에서 비롯한 것일까? 아니다. 표현하는 것 자체로 가슴 속의 폭풍우를 잠재울 수 있는 강인한 마음 덕분이겠지.

그리고 뒤이어 이어진 ‘가시나무’ 역시 벅차오르기에 충분한 무대였다.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거실을 지나가다 엄마, 아빠가 보던 한 TV 프로그램에서 자우림이 ‘가시나무’를 부르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나는 그걸 듣고 우뚝 멈춰 섰던 것 같다. 그리고 처음으로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 그 이후 나는 한동안 등교 버스에서 ‘가시나무’를 주구장창 들었다. 그 당시 이 노래를 들으며 했던 생각이 지금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웃기기도 했지만, 여전히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어쩜 이렇게 자우림의 감성과 맞닿아 있을까 싶기도 했다. 자우림이 불러서 더 설득력 있는 ‘가시나무’, 더 우리의 마음을 후벼파는 노래.

또 한 구간 눈물이 왈칵 차오른 부분은 ‘있지’-‘샤이닝’. ‘있지’를 들으면서는 문득, 그 가사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삶이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일 비가 내리면 그냥 비 맞고, 내일 세상이 끝난대도 그냥 끝 맞는, 그런 게 그냥 삶이니까.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서는 꼭 ‘있지’를 틀어달라고 해야지- 생각하던 와중에 진만 형이 밴드의 묘지가 있다면 그곳엔 ‘있지’와 ‘샤이닝’의 가사를 새기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어쩐지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그들이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는 마음이, 나와 공명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이후 ‘밀랍천사’로 시작된 스탠딩은… 기억이 없다. 너무 흥분해버렸고, 너무 신나버렸다.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하지만 ‘밀랍천사’는 윤아 웅니의 오타쿠 기질을 너무 잘 볼 수 있는 곡이라서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곡이다. 1997년에 발매한 Heart>앨범을 언젠간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멘트가 주옥같았고, 모든 곡이 의미있던 이번 공연을 활자로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없어 그저 아쉽다.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사회, 그 와중에 우리는 더 바른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조금씩 변하고 있으니까- 하는 연대의 메시지. 각자 방법은 달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하고 있을 거라는 희망, 적어도 이곳에 모인 사람들만큼은 그럴 것이라는 든든한 믿음. 윤아 웅니가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어주는 것도, 그리고 진만, 선규 형이 그 뒤에 든든하게 서 있어 주는 것도 참 멋지고 부러운 지점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변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25년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그들의 세월이 단단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홀로 목소리를 내는 일은 아무래도 꽤 외로우니까.

여러 미디어를 통해 본 윤아 웅니는 사회적 공감대가 높고, 섬세한 사람이다.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불공정한 일들에 가슴 깊이 아파하고 슬퍼하는 사람. 이런 우울을 먹이 삼아 더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의 말이 가슴 깊이 박혔다. 그리고 나는 그가 그걸 위해서 누구보다 바르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란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대단한 사람, 나의 우상, 나의 아이돌.